오일러(1707.4.15~1783.9.18)스위스의 수학자·물리학자. 바젤 출생. 주로 독일·러시아의 학사원을 무대로 활약하였고, 해석학의 화신(化身), 최대의 알고리스트(algorist:數學者) 등으로 불렸다. 그의 연구는 수학·천문학·물리학뿐만 아니라, 의학·식물학·화학 등 많은 분야에 광범위하게 걸쳐 있다. 처음에는 목사가 되기 위하여 바젤대학에서 신학과 헤브라이어를 공부하였으나, 수학에서 J.베르누이의 관심을 끌어 곧 D.베르누이, N.베르누이와 사귀었다. 이와 같이 베르누이가(家) 사람들의 조언과 상트페테르부르크학사원에 간 베르누이 형제의 소개로, 처음에는 그 학사원의 의학부에 이어서 수학부에 적을 두었다. 40년 프리드리히대왕의 초청을 받아 베를린으로 이주하였다. 그 후 24년간 베를린학사원의 수학부장으로서 연구에 몰두하였으나 점차 궁정에서의 인기가 떨어져 다시 예카테리나 여제(女帝)의 청을 받자 66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왔다. 후에 시력을 잃고 장님이 되었으나 천부적인 기억력과 강인한 정신력으로 연구를 계속하였다. 수학자로서의 연구를 시작한 시기는 뉴턴이 죽은 시기에 해당하여 해석기하학·미적분학의 개념은 갖추어져 있었으나 조직적 연구는 초보단계로 특히 역학·기하학의 분야는 충분한 체계가 서 있지 않았다. 이러한 미적분학을 발전시켜 《무한해석 개론:Introductio in Analysis Infinitorum》(1748) 《미분학 원리:Institutiones Calculi Differontial》(55) 《적분학 원리:Institutiones Calculi Integrelis》(68∼70), 변분학(變分學:극대 또는 극소의 성질을 가진 곡선을 발견하는 방법)을 창시하여 역학을 해석적으로 풀이하였다. 이 밖에도 대수학·정수론(整數論)·기하학 등 여러 방면에 걸쳐 큰 업적을 남겼다. 그 중에도 삼각함수의 생략기호(sin, cos, tan)의 창안이나 ‘오일러의 정리’ 등은 널리 알려져 있다. 베를린 시대에 프리드리히대왕의 질녀에게 자연과학을 가르치기 위하여 쓴 《독일 왕녀에게 보내는 편지》는 당시 계몽서로서 유명하였으며 7개 국어로 번역 출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