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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마(1601~1665)프랑스의 수학자. 툴루즈 근처 보몬 드 로마냐 출생. 수학을 취미로 하는 아마추어 수학자였으나 여러 방면에 획기적인 업적을 남겼으므로, 17세기 최고의 수학자로 손꼽힌다. 1631년부터 법률가로서 툴루즈의 청원위원(請願委員)이 되었으며, 이어 48년부터는 툴루즈 지방의회의 칙선의원(勅選議員)이 되어 생애를 마칠 때까지 그 직에 종사하였다. 데카르트, 메르센 등과 서간을 통하여 연구 성과를 통보하였으며 생전에는 그 연구 내용을 공간(公刊)하지 않았다. 또 이 서간은 결론으로서 얻어진 정리(定理)만을 표시하고, 증명방법을 풀이하지 않았기 때문에 후의 수학자에게 많은 과제를 남기게 되어 수학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 연구 성과 가운데 우선 미적분(微積分)에 관한 업적을 들 수 있다. 연속곡선(連續曲線)에 접선(接線)을 긋는 방법으로서 제기된 이 문제는 페르마를 ‘극값[極値]의 문제’로 유도하여 미분의 개념에 도달시킨 것이며, 미적분학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는 뉴턴이나 라이프니츠가 태어나기 10여 년 전에 이런 성과가 얻어진 점은 주목할 만하다. 또 이것과 관련하여 극대극소(極大極小)의 문제를 연구하고, 이를 광학(光學)에 응용하여 ‘최단 시간의 원리(페르마의 원리)’를 발견했다. 또 빛의 반사·굴절의 법칙을 유도해냈고, 후년의 역학 전개에 중대한 영향을 주었다. 기하학 분야에서는 데카르트와는 별도로 해석기하학을 수립하여 3차원 공간을 취급하였다(데카르트는 2차원). 파스칼과의 서간에서는 확률을 논하여, 오늘날 파스칼과 함께 확률의 수학적 이론의 창시자로 인정된다. 연구 활동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정수론(整數論) 분야이다. 디오판토스의 수론서(數論書)에 자극되어 관여하게 된 이 분야에서는 소수수열(素數數列:페르마형 소수)의 추측에서 시작하여, 페르마의 대정리(np-n의 정리), 4n+1형 소수에 관한 제곱수[平方數]의 합의 정리, n=2의 디오판토스방정식의 해답의 정리 등에서 이른바 ‘최후의 정리’에 이르기까지, 뛰어난 통찰력이 발휘되어 정수론 연구사상 커다란 전기가 되었다. 사실 페르마가 발견하고 스스로 증명했다고 하는 정리의 증명에 후년의 수학자들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최후의 정리’는 오늘날까지도 미해결인 채 과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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